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웅 : 천하의 시작 (문단 편집) === 역사적 맥락과 영화적 논의 ===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은 침략과 통일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국시대 통일 과정과 전국시대 통일 이후의 진의 통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처사에서 오는 평가라는 견해가 있다. 전국시대부터 이미 정치•경제•문화 등에서 통일론이 형성되어 왔고 각 나라의 백성들이 평화에 대해 염원했으며, 통치 영역을 초월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가 긴밀해 지면서 통일욕구는 더 증폭됐다. 또 전국시대 각국은 문자와 언어와 공동조상을 바탕으로 화하(華夏)라는 의식이 있었으며 변방을 만이융적으로 보는 중화의식이 이미 전국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출처: 신채식. 동양사개론 개정판. 삼영사. 2017년 3판 125~6쪽 참고] 즉 전국시대 사람들은 계속 서로 싸워대는 것에 피로를 느끼고 있었고 자신들이 같은 민족이며 통일을 해서 평화 속에서 잘 살고 싶다는 의식이 만연했기에,[* 가령 《맹자》 에서 [[맹자]]와 [[양양왕]]의 대화를 보면, 왕이 "천하가 어떻게 정해지겠소(天下惡呼定)?"이라고 묻자, 맹자가 "하나로 정해지겠지요(定于一)"라고 대답하는 대목이 나온다. 즉 맹자가 살았던 시대부터 이미 천하가 통일되는 과정에 있다는 의식은 당시 지식인들의 상식이었다. 춘추 말기를 살았던 공자는 주 천자를 중추로 하는 춘추전국 이전의 봉건제로 회귀를 소망했지만, 전국시대 한복판을 산 맹자에 이르면 봉건제도를 이상적 천하체제로 보는 유가 철학자조차도 기존 질서의 복귀나 열국의 공존 같은 건 가망이 없는 일이라고 본 것이다.] 관점에서 본다면 나라가 진에게 통일'''당'''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전쟁은 더 없을 것이므로 백성 개개인 입장에서는 통일된 왕조 속에서 사는 안정된 삶을 바랄 수 있었다.[* 참고로 이미 당시 진은 당시 중국 영토의 3분의 1, 국부의 2분의 1을 장악하고 갈수록 나머지 6국과 국력 차를 벌이고 있었다. (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2017년 18쇄 70쪽 참고) 이런 상황에서 각 6국의 백성들이 진을 이기고 각국이 번영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진이 전국을 통일할 때 각국의 대다수 백성들이 진을 외세라고 적대하기만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위 주장에서 언급한 진의 융통성없는 법치에 대한 각국 백성들의 반발은 통일 이후 2세 황제 [[호해]] 때 극대화되어 나오는 것이므로 영화상의 통일 시기와 안 맞다. 결국 영화의 내용은 '''통일 당시'''의 역사적 의식과 내용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영화상의 전국시대 당시의 중화의식과 통일 필요성에 비해 20~21세기 최근의 중화의식은 중국 내 소수민족들을 더 포괄적으로 '한족을 위해' 통일하려 든다는 것이며, 그걸 위해 중국 정부가 이 영화의 '통일' 이라는 주제를 프로파간다로 이용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장이머우 감독은 <[[황후화]]>(2006)에서도 유사한 방식을 선택한다.[* <영웅>의 진왕과 <[[황후화]]>의 당 황제 캐릭터는 <[[삼국지 : 명장 관우]]>(맥조휘, 2011), <[[조조: 황제의 반란]]>(조림산,2012)의 조조 캐릭터에 대한 해석과 유사하다.] 백보 양보해서 영화가 표방하는 통일 중국이라는 주제를 긍정한다 해도 중국사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다 본 후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유는 이렇게 거창하게 대의를 내걸고 통일한 진나라가 '''겨우 3대 15년 만에 망해버렸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정말로 하나된 중국을 만든 것은 진이 아니라 한이었으며, 나라 한번 세우면 기본값이 4-500년이었던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 역사를 뒤져도 15년짜리 왕조는 절대로 성공케이스로 쳐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무명(이연걸)이고 파검(양조위)이고 간에, 무익한 전쟁을 없애고 무력에 의해서라도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며 진시황을 띄워줬는데 지가 만든 나라를 겨우 3대 유지할 능력조차 없는 놈[* 하지만, [[진시황]]이 후대에도 호평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고평가를 받은 것을 보면, 그가 과대평가받았다는 주장 확실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단 진시황은 내치를 다지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긴 했고, 실제로 성과도 꽤 있었다. 일례로 그를 까는 데 자주 인용되는 [[만리장성]]의 축조 건에 대해서는 후대의 왕조들도 수시로 성벽을 보수해서 사용했다는 점과, 이 성벽 자체의 존재로 인해 [[흉노]]나, [[고구려]], [[거란]] 등의 북방 민족들의 침략을 막거나 지연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진시황]] 본인이 후대의 재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기엔 그 아들 [[호해]]가 다 말아먹은게 문제고, 진시황 사후에 나타난 [[한고제]]가 [[한나라]]를 세워서 천하통일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그가 묻혀버린 것이 크다. 말하자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중국]]판이자 [[수문제]]의 대선배인 셈이다. 실제로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법이 너무 엄격했던 것은 그랬다쳐도, 진시황이 자식농사만 잘했어도 [[진(통일왕조)|진나라]]가 단명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문제는 자식농사 잘 짓는 것도 군주의 덕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유능하고 인성도 좋은 후계자를 키워 내고 그 후계자가 권좌를 물려받고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안배하거나 그렇게 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도 엄연히 군주가 해야 할 역할이다. 태종이 외척이나 공신을 숙청하는 면모가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숙청이 세종대왕이라는 후계자가 본인이 뜻하는 정치를 마음껏 할 수 있게 안배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후대에 높게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다. 무능하고 인성도 나쁜 양녕대군에게 적장자라고 권좌를 물려 주고 외척이나 권신이 폭주하지 못하게 안배를 해 놓지 않았다면 조선은 일찍 망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진시황 본인이 무능하다는 주장은 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지만 그가 유능하다고 해서 유능한 자에게 권좌를 물려 주지도 못하고 그렇게 되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지도 못한 점까지 옹호해 주는 것은 진시황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을 과대평가해서 헛지랄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테러와의 전쟁]]에 열중하는 미국을 비판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영화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평론가들은 오히려 [[중국]]이 통합, 진보라는 명분 아래에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https://www.facebook.com/jegalhwy/posts/1505669112868252|#]] 사실 이런 관점도 꽤 설득력은 있는데, 그 [[중국 공산당]]이 중국 통일을 완수한 위대한 군주라며 띄워주는 [[진시황]]이 이 영화에서는 영화상에서는 비록 암살의 위협 때문에 그랬다고는 하나, 포상의 등급에 따라 자기를 몇 보 앞에서 알현할 수 있는지를 일일이 정해놓은 [[강박증]]이 심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거나, [[조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문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 [[춘추전국시대]] 동안에 [[중국]] 전체가 수많은 나라로 나뉘어 난립하면서, 여러 민족들이 [[한족]]에 동화되는 식으로 중화권에 편입했기에 사용되는 언어도 서로 다르고, 따라서 그 언어에서만 쓰이는 문자가 마구마구 [[한자]] 체계에 편입되었으니, 나라별로 문자가 다른 건 당연하다. 심지어 이미 한자 체계를 통일화한 현대 중국에서도 특정 방언에서만 쓰이는 문자들이 잊을 만하면 속속들이 발굴되어, [[중국 공산당]] 측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을 두고 자기가 이들을 모두 정복한 다음에 이를 하나로 통일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연걸|무명]]이 불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 특히 [[이연걸|무명]]은 [[양조위]]의 글자를 받아가려고 [[조나라]]에 있는 서당을 찾아갔을 때, [[진(통일왕조)|진나라]]의 군대가 서당을 공격하려고 하자, [[장만옥|비설]]과 함께 날아오는 화살들을 무술을 이용해 막아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 서당의 훈장이 '''"아무리 진나라의 군대가 강하다고 한들, 조나라의 문자를 말살할 수는 없다!"'''고 외치고는 제자들에게 조나라 문자의 정수를 배우게 될 것이라며 강의를 시작하고, 그 제자들은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꿋꿋하게 서예에 임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진시황 자신을 죽일 뻔했으나 죽이지 않은 무명을 죽이라 명하면서도 그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 주고는 깊은 생각에 빠지는 장면들을 보면, 도저히 공산당에 대한 찬양이라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결말부에서도 보면, 무명이 파검에게서 받아온 서예 작품[* [[조나라]] 문자로 [[劍]]자를 쓴 것이다.]에 숨어있던 메시지가 진정한 검술의 경지는 검이 아닌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임을 알고 감탄하는 [[진시황]]에게 무명이 암살하려는 척하면서 칼자루로 그의 허리를 찌르면서, '''"전쟁에서 죽어간 이들은 [[진시황|전하]]가 최고의 경지를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도 [[중국]] 통일이라는 미명 하에 각종 잔악한 행위를 일삼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볼 여지가 많다. 애초에 주인공의 이름이 '이름이 없다'는 뜻의 무명인 것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이를 그가 진시황에게 한 대사와 엮어보면, [[하나의 중국]]이라는 담론에 매몰되어 수많은 문화와 국민들을 짓밟으려는 행위는, 거꾸로 이름모를 이들로부터 통치자의 목이 옥죄어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앞 단락에서 제기한 기껏 천하를 통일해놓고 단명 왕조로 끝난 진이라는 '허무개그'가 바로 감독의 본래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가령 파검이 '천하' 두 글자를 써서 무명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파검이 쓴 글자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다. 무명의 증언을 통해 들을 뿐이다. 그 이전까지 압도적인 미장센으로 온갖 화려한 시각적 연출을 연속으로 발휘해 온 감독이, 정작 서사상 가장 중요한, 가장 관객에게 설득력을 불러일으켜야 할 이 대목에서 애매하고 허술한 '들려주기' 방식으로 넘어가 버린 것인데, 이는 즉 파검의 설득에 동요된 무명과 달리 '''관객은 파검에게 설득되지 않도록''' 고의적으로 거대한 미장센의 화폭에다 뚫어놓은 구멍이 아니냐는 이야기. 심지어 이때 파검이 글자를 쓴 곳은 '''모래바닥'''인데, 즉 그가 쓴 천하는 바람이 불면 곧 다른 모래에 덮여 사라질 버릴 허망한 것이라는 메세지로 읽을 수 있다.[* 애초에 파검이 원하던 것은 천하통일 자체가 아니다. 그의 연인인 비설이 무명과 함께 서당을 공격하는 [[진(통일왕조)|진나라]] 군대의 화살을 목숨을 걸고 막아내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비록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위해 천하통일의 대의는 받아들이겠으나, 이를 핑계로 문화를 말살하는 행위를 하지말 것을 촉구하는 게 그의 진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에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분서갱유]]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파검이 무명에게 써줄 글자를 습자하는 장면에서 劍자를 모래 위에 쓰고, 다시 모래를 밀어버려서 지우는 장면이 여러 차례, 화면을 꽉 채워 관객에게 보여진다. 좀더 나아가 해석하면 '''진시황의 천하는 '칼로 쓴 습작'에 불과하다'''는 의미로까지 해석 가능하다.[* 중국에서 [[후한]] 때까지 [[종이]]가 발명되지 않은 탓에, 서예를 할 때 모래에다 먼저 써놓고서 [[죽간]]이나 [[명주천]]에다 이를 보고 베끼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감독이 이를 중요한 장면의 소재로 사용한 이상 감독의 의도와 무관한 단순 고증으로만 바라볼 이유는 없다. 진나라가 검은색을 숭상한 것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지만 얼마든지 해석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것처럼.]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논란이 이는 경우는 한두 번도 아니다. 일례로 위에서 언급한 [[황후화]]에 나오는 대왕은 [[중국]] 통일이라는 야심에 찬 인물이지만, 동시에 멀쩡히 살아서 재혼한 전처를 죽었다고 거짓말하거나, 이를 잘 아는 왕후를 그 아들에게 직접 독약을 먹여서 죽이라고 하고[* 당연히 아들은 이를 거부하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반란까지 일으켰고, 이 반란이 실패하자 그대로 자결했다.], 그 와중에 자기만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던 막내아들은 직접 허리띠로 패죽여버리는 [[인간 쓰레기]]로 묘사된다. 이는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해봐야 [[중국 공산당]]의 통일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각종 잔악한 행위를 비판했다고밖에 볼 수 있어서[* 실제로 그런 의도로 이렇게 연출했냐는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그렇다.], 영화를 본 평론가들은 최소한 [[황후화]]에 대해서만큼은 친정부적인 프로파간다는 들어있지 않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사실 [[장이머우]] 감독은 의외로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은 것 말고는 [[중국 공산당]]의 의뢰를 받고 작품을 만든 적이 없다. 올림픽이야 워낙 국제적인 대행사니,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크나큰 영광이 되니까 그냥 참여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되려, 영웅의 개봉 후에도 은근슬쩍 공산당의 실책을 까는 내용을 영화에 간간이 집어넣어서, [[중국]] 내에서는 해외에서의 인식과는 반대로 장이머우 감독을 반정부 인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때문에 몇몇 작품은 해외 영화제로의 출품이 금지된 것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보면, 단순히 친정부적인 메시지를 담았다고만 해석할 경우, 오히려 영화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짐을 알 수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백부장 무명이 진왕을 암살하기에 앞서 진왕에게 3명의 협객을 처단한 거짓된 이야기를 고하고, 진왕이 그 얘기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거짓된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추측하며 추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무명은 진왕의 추측도 잘못된 것이라 밝히며, 마침내 진실된 이야기를 고한다. 그리고, 암살시도를 포기[* [[김규삼]]은 역전시네마에서 이때 진왕이 순순히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어색한 장면이었다고 평했다. “불로초 찾는데 혈안이 되고 수만 명을 동원해 거대한 왕릉을 조성할 정도로 만년까지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진시황인데 겨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그렇게 순순히 목숨을 내놓을 리가 없잖아?”라고. 굳이 끼워맞춘다면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서복을 바다로 보내고 진시황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 것은 진시황 본인이 맛이 간 후대의 일이니 영화의 작중 시간대와는 별 상관없기는 하지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진왕 자신이 만든 법[* 대신 외에는 아무도 100보 내로 들어올 수 없지만, 자객 셋을 무찌른 자에게는 포상으로 10보 앞에서 술을 하사한다.] 때문에 원치 않으면서도 무명에게 암살할 기회를 주고, 또 그 법[* 왕을 암살하려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때문에 자신을 이해해 준 무명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다는 점이다. 특히 무명을 죽이라고 간언하는 장면은 마치 신하들이 진왕을 협박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리고 그 신하들은 진의 군사들이 무명의 시신을 정중히 거두며 '영웅!'이라며 외치는 장면 뒤 멀리 조명하는 장면에서 전부 사라지고 없다. 그의 말처럼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신하가 주위에 없는 외로운 진왕의 심리를 표현한 장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